한국형 인질사건
link  관리자   2021-08-23

유럽사람이나 미국사람이 저지르는 인질사건은 그것이 목숨을 건 범죄인 만큼 응분의 목적이 뚜렷하다. 몇백만 달러를 어디다 갖다놓으
라든지, 감옥에 갇힌 동료들을 석방하라든지, 생명을 걸 만한 대가를 요구하고 인질을 잡는다.

한데 우리 한국인의 인질은 목숨을 걸 만큼 목적이 뚜렷하지가 못하다, 정말 이상한 인질이 아닐 수 없다.

법적 목적으로 저지르는 것이 아니라 맘속에 누적된 원한을 풀기 위해서 저지르기 때문인 것이다.

이번 오오사카에서 일어난 재일동포의 은행 인질사건도 너무나 한국적인 한국형 인질사건이었다. 돈을 털러 은행에 들어간 것도 아니요,
또 원한의 대상인 은행의 이사장을 죽이려고 들어간 것도 아니다. 굳이 죽이려 들었다면 아무런 경호 없이 나다니는 자연인쯤 아무데서
수월스레 만나 죽일 수 있었을 텐에, 본인이 있는지 없는지도 확인하질 않고 은행에 들어갔다는 데서 그 정을 알고도 남음이 있다.

인질을 풀고 검거 당하는 순간 "성공했다. 고맙다"하며 웃었다는 점에서 더욱 이 사람이 그 엄청난 범죄를 저질렀는가 의아심을 가중시키
고 있다.

자신의 내부에 부풀대로 부푼 원한을 세상을 깜짝 놀라게 하는 그 같은 방법으로 분출시키려 했고 또 분출시킨 것만으로 만족했기에 성공
했다고 자족하고, 자신의 원한해소를 위해 놀라고 겁먹고 고생을 한 사람에게 고맙다는 감정까지 우러나올 수 있었던 것이 아닌가 싶다.
생각할수록 이상야릇해지는 인질사건인 것이다.

그것은 원한에 대한 한국인의 자학적 해소라는 것으로 풀어볼 수밖에 없다. 왕자 햄릿은 그의 부왕이 숙부에게 왕위와 왕비마져 빼앗기고
살해당한 사실을 부왕의 망령으로부터 고지받고 원한에 들끓는다.

햄릿은 거짓으로 미친 채 은인자중 끝에 복수를 하고 만다. 곧 서양사람은 원을 복수로써 외적으로 처리한다.

그래서 영어에 원을 나타내는 낱말이 없다. '햄릿'에서도 복수(revenge)로 그 감정을 표현하고 있을 따름이다.

한데 우리 한국인은 증오, 원한, 질투 같은 적대감정을 그때그때 외적으로 분출하지 못하고 내적으로 억압 축척시킴으로써 자가중독 상태
에 빠진다.

그때그때 풀어버리면 풍선만할 압력을 농축시키다 보니 원자핵만한 압력으로 커지고, 그것을 감당할 수 없을 때 한국형 인질사건 같은 자
학처리로 나타나게 된다.

그것을 끝내 못풀고 죽었을 때 완전히 죽지 못하고 이승을 울어헤매는 원귀가 되었던 것이다. 옛날 우리나라에 그토록 귀신이 많았던 것도
너무나 한국적인 이 '원' 때문이었던 것이다.
















배꼽의 한국학
1984년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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